단양 고수 동굴과 천둥산 박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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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고수 동굴과 천둥산 박달재

신명주부학교 0 4,145 2008.04.11 21:57
중고등부 봄 소풍은 단양 고수 동굴을 거쳐 청풍 명월의 본고장 제천 박달재로 갑니다.

고수 동굴과 박달재에 대해서 알고 떠날까요?

단양고수리동굴은 단양읍 금곡천 냇가에 있다. 총길이는 1,200m이나 현재 공개하여 관광코스로 이용하고 있는 구간은 600m 이며, 안쪽의 나머지 지역은 동굴환경을 보존하기 위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동굴 내부에는 동굴의 수호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사자바위를 비롯하여, 웅장한폭포를 이루는 종유석, 선녀탕이라 불리는 물 웅덩이, 7m 길이의 고드름처럼 생긴 종유석, 땅에서 돌출되어 올라온 석순, 석순과 종유석이 만나 기둥을 이룬 석주 등이 많다. 그 밖에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다리, 굽어진 암석, 꽃모양을 하고 있는 암석, 동굴산호, 동굴진주 등 희귀한 암석들도많다.

단양고수리동굴은 고생대의 석회암층에서 만들어진 석회동굴로서 그 학술적 가치가 크며 다양한 동굴 생성물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박달재의 유래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갈라놓은 험한산을 박달재라한다.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마침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가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과년한 딸이 있었다. 사립문을 들어서는 박달과 눈길이 마주쳤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랐고, 금봉은 금봉대로 선비 박달의 의젓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 밤 삼경이 지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밖에 나가 서성이던 박달도 역시 잠을 못 이뤄 밖에 나온 금봉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선녀와 같아 박달은 스스로의 눈을 몇 번이고 의심하였다.
박달과 금봉은 금새 가까워 졌고 이튿날이면 곧 떠나려던 박달은 더 묵게 되었다. 밤마다 두사람은 만났다. 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를 굳게 약속했다. 그리고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났다. 금봉은 박달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사립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서울에 온 박달은 자나 깨나 금봉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만을 지었다.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과장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던 박달은 결국 낙방을 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금봉은 박달을 떠나 보내고는 날마다 성황당에서 박달의 장원급제를 빌었으나,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금봉은 그래도 서낭에게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박달이 떠나간 고갯길을 박달을 부르며 오르내리던 금봉은 상사병으로 한을 품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금봉의 장례를 치르고 난 사흘 후에 낙방거자 박달은 풀이 죽어 평동에 돌아와 고개 아래서 금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달은 벌떡 일어나 금봉의 뒤를 쫓아 금봉의 이름을 부르며 뛰었다. 고갯마루에서 겨우 금봉을 잡을 수 있었다. 와락 금봉을 끌어안았으나 박달은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일이 있는 뒤부터 사람들은 박달이 죽은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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